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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경제

채권시장이 AI에 값을 매긴 날 — 코스피 −5.8%의 진짜 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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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적 발표는 없이, 이렇다할 악재도 없이 코스피는 5.8%가 빠졌다.

 

8월 19일 아침, 코스피는 개장 6분 만에 매도 사이드카가 발동됐다. 프로그램 매도호가의 효력이 5분간 정지될 만큼 매물이 한꺼번에 쏟아졌다는 뜻이다. 올해 들어 벌써 48번째. 그리고 장이 끝났을 때 지수는 398포인트, 5.80%가 빠진 6,471.17이었다. 삼성전자 −7.82%, SK하이닉스 −9.75%.

이상한 점은 따로 있다. 이날 국내에는 이렇다 할 악재가 없었다. 미국에서도 AI 기업의 실적 발표는 단 한 건도 없었다. 실적이 무너진 것도, 전쟁이 터진 것도 아닌데 지수가 하루에 5.8%를 반납했다. 그렇다면 값을 매긴 건 누구였을까.

 

범인은 주식시장이 아니라 채권시장이었다

미국 30년물 국채금리는 19년 만의 최고치를 갈아치웠다

 

전날 밤, 미국 30년물 국채금리가 5.33%까지 올랐다. 2007년 이후 19년 만의 최고치다. 10년물도 4.7%대까지 밀려 올라왔다. 주식시장이 열리기도 전에, 채권시장이 먼저 가격표를 바꿔 단 것이다.

그리고 그 금리를 밀어올린 주역이 다름 아닌 AI다.

 

AI가 찍어낸 빚, 2,000억 달러

빅테크 회사채가 국채 수요 25%를 흡수해버렸다

 

빅테크는 지금 데이터센터를 짓는 데 천문학적인 돈을 쓰고 있고, 그 돈의 상당 부분을 회사채로 조달하고 있다. 올해 빅테크가 찍어낸 회사채만 약 2,000억 달러. 미국 투자등급 회사채 전체 발행액은 1.5조 달러로 작년보다 36% 늘었다.

문제는 이 돈이 어디서 오느냐다. 채권을 사줄 돈의 총량은 정해져 있다. 빅테크 회사채 2,000억 달러는 민간 투자자에게 돌아갈 국채 순공급의 25%에 해당하는 자금을 빨아들였다. 국채를 사야 할 돈의 4분의 1이 AI 데이터센터의 청사진으로 흘러간 셈이다. 사줄 돈이 줄면 국채는 더 높은 금리를 제시해야 팔린다. 장기금리가 오르는 구조적 압력이 여기서 만들어졌다.

 

순환 — AI가 빌린 돈이 AI 주가를 깎는다

제 꼬리를 무는 순환 구조가 만들어지고 있다.

 

여기서 구조 하나가 완성된다. AI가 돈을 빌린다 → 채권 공급이 늘어 장기금리가 오른다 → 그 금리가 미래 이익의 할인율이 되어 AI 주가를 깎는다. AI가 자기 자본비용을 스스로 올리는 순환이다.

이 순환이 무서운 건 심판이 바뀌었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AI 지출이 정당한가를 심판하는 건 실적 발표일의 주식시장이었다. 분기마다, 가이던스를 보고, 회사별로. 그런데 이제는 채권시장이 실적과 무관하게, 아무 날에나 값을 매길 수 있게 됐다. 8월 18일 밤이 정확히 그런 날이었다 — 실적 이벤트가 하나도 없는 날, 미국 메모리·스토리지주가 4~9%씩 무너지고 필라델피아 반도체지수가 5% 가까이 빠졌다.

 

 

그 청구서는 하루 만에 서울에 도착했다

그 청구서가 한국으로 날아오는 데 걸리는 시간은 길지 않았다.

 

한국은 이 순환의 말단에 있다. 반도체가 지수의 심장인 시장에서, 미국 장기금리가 AI 하드웨어의 할인율을 건드리면 코스피는 실적도 뉴스도 없이 흔들린다. 외국인이 4조 원, 기관이 1조 8천억 원을 팔았고 개인이 5조 6천억 원을 받아냈다.

흥미로운 대목은 환율이다. 통상 이런 급락일에는 원/달러가 같이 튄다. 그런데 이날 환율은 오히려 14.1원 내린 1,397.7원 — 11개월 만에 1,400원 아래로 내려갔다. 한국을 판 돈이 달러로 도망친 게 아니라는 뜻이다. 이번 하락의 성격이 '한국 리스크'가 아니라 '금리 재계산'임을 시사하는 단서다. 무너진 게 아니라, 다시 계산된 것이다.

 

이 순환은 금리가 낮을 때만 순환이다

돈을 빌려 성장을 사는 모델은 자본비용이 성장 기대보다 낮을 때만 굴러간다. 30년물 5.3%는 그 전제에 처음으로 굵은 물음표를 달았다. 그래서 다음 분기점이 중요하다. 8월 26일 엔비디아 실적은 "성장이 금리를 이길 수 있는가"에 대한 기업 쪽의 답변이고, 8월 27일 잭슨홀은 금리 쪽의 답변이다. 두 답이 어긋나는 순간, 시장은 또 한 번 계산기를 두드릴 것이다.

어제 우리가 본 건 폭락이 아니라 채점이었다. 채권시장이 AI에 처음으로 제값을 물어본 날 — 그리고 그 질문지가 하루 만에 서울에 도착한 날.

 

※ 이 글은 정보 전달을 위한 것으로 특정 종목의 매수·매도 권유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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