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약까지 만든다는 AI 회사

2026년 6월 말, Anthropic이 자체 신약 개발 프로그램을 시작한다고 발표했다. 챗봇 만들던 회사가 왜 약을? 처음엔 뜬금없어 보인다. 그런데 발표를 뜯어보면 앞뒤가 맞는다. 같은 날 이들은 'Claude Science'라는, 60여 개의 과학 도구·데이터베이스를 연결한 연구자용 AI 워크벤치를 함께 내놨다. 이걸 팔려면 "우리도 이걸로 실제 신약을 개발해봤다"는 경험이 필요하고, 연구가 어디서 막히고 실패하는지 직접 겪어야 제품을 다듬을 수 있다. 즉 신약개발 자체가 목적이라기보다 자기 제품을 자기가 써보는 검증(dogfooding)에 가깝다.

그리고 하필 방치·희귀 질환을 골랐다. 제약사에 도구를 파는 회사가 돈 되는 블록버스터 신약을 직접 개발하면 고객과 정면으로 경쟁하게 된다. 그래서 상업성이 낮아 대형 제약사가 잘 건드리지 않는 영역을 택했다. 공익법인(PBC, 실효성이 있는지와는 별개로 Anthropic은 스스로를 이렇게 규정한다)이라는 명분과도 맞고, 희귀 유전질환은 대개 단일 유전자 결함에서 시작하고 타깃이 깨끗해 AI가 성과를 내기에도 유리하다. 순수 자선도, 뜬금없는 다각화도 아니다. "신제품을 팔기 위한 레퍼런스 겸 실전 훈련장을, 고객과 겹치지 않는 영역에서 돌린다"는 치밀하게 계획된 전략적 접근인 것이다. 그해 4월, 전(前) 제넨텍 계산생물학자 중심의 10인 규모 스타트업 Coefficient Bio를 약 4억 달러에 인수한 것도 이 발표를 위한 사전 포석이었다.
사실은 다 같은 전략이었다 — "위층으로 올라가기"

여기까지 오면 신약은 특이한 사건이 아니라 패턴의 한 사례라는 게 보인다. Anthropic은 금융에서 대형 은행용 사전제작 에이전트와 금융 특화 모델, Microsoft 365 통합, Moody's 데이터 제휴, 그리고 Blackstone·Goldman 등이 참여한 약 15억 달러 규모 합작사까지 묶어 "월가의 운영 계층"을 통째로 잠재 고객으로 삼으려 한다. 코딩에서는 Claude Code가 2026년 초 연환산 매출 약 25억 달러에 이르러 Anthropic 엔터프라이즈 매출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디자인에서는 4월에 내놓은 'Claude Design'으로 Figma·Adobe·Canva의 영역까지 들어갔다(실제로 출시 당일 Figma의 주가는 약 5% 하락하기도 했다).

신약·금융·코딩·디자인이 전부 같은 논리다. 이제 모델(인프라)만 팔던 회사가 "응용 계층"을 직접 소유하려 하는 셈이다. 이유는 단순하다. 기반 모델은 갈수록 범용재가 되어 마진이 얇아지는데, 실제 워크플로를 쥔 응용 계층이 돈과 고착(lock-in)을 만든다. 확정된 사실이라기보다 업계의 지배적 해석에 가깝긴 하지만, 업계는 이 흐름을 "위층으로 올라가기(moving up the stack)"라고 부른다. 모델·칩 계층조차 언제까지나 안전한 자리는 아니라는 신호도 있다. 7월 중순엔 Apple이 장중 한때 Nvidia를 제치고 시총 1위(약 4.9조 달러)에 오르기도 했다. 칩 하나로 정상을 지키는 시대가 영구적이진 않을 수 있다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심지어 보도에 따르면 Anthropic은 기밀 상장 서류(S-1)를 내고 1조 달러에 육박하는 밸류에이션이 거론되며 2026년 흑자가 전망된다. 돈 못 버는 버블이라던 통념과 달리, '돈 버는 AI'와 '돈 쓰는 AI'가 갈리기 시작한 것이다.
공급자가 경쟁자가 되는 순간

문제는 여기서 생긴다. 자기 모델 위에서 사업하던 스타트업이, 어느 날 자기 공급자의 경쟁 상대가 된다. 2025년 6월, Anthropic은 OpenAI가 인수한다는 말이 돌던 코딩 스타트업 Windsurf에 Claude 접근을 끊었다. Anthropic의 공동창업자는 "경쟁자 품으로 갈 회사에 Claude를 파는 건 이상하다"고 했다. 공급자가 제공하던 모델 위에 얹혀 살던 회사가 전략적 판단 하나에 하루아침에 연료가 끊긴 셈이다.
그래서 신약에서 봤던 "고객과 안 겹치게 방치 질환을 고른다"는 조심스러움은, 사실 일반 원칙이 아니다. 그건 잠재 경쟁자(제약사)가 곧 구매자이기 때문에 강제된 예외였다. 디자인·코딩에서 Anthropic의 진짜 고객은 Figma나 Canva가 아니라 그걸 쓰는 기업·개발자다. 이들은 매출원이 아니라 생태계 파트너일 뿐이라, 보호할 상업적 이유가 애초에 약하다(실제로 Canva는 경쟁자이자 협업 파트너라는 어정쩡한 관계로 묶여 있다). 결과가 더 좋으면 사용자는 그냥 Claude Design으로 간다. "충돌 회피"는 원칙이 아니라, 상대가 내 구매자일 때만 작동하는 제약이다. 겹치지 않으면 그냥 경쟁한다.
그런데 왜 우리에겐 천국인가

여기 역설이 있다. 위층에서는 이렇게 사다리가 걷어차이는데, AI를 도구로 쓰는 중간 생산자, 그러니까 콘텐츠를 기획하고 만드는 사람에게는 지금이 천국이다. 매일 새 모델이 나오고, 클릭 한 번에 결과물이 나오고, 원가 이하의 추론과 후한 무료 티어가 쏟아진다. 오픈웨이트·비서구권 대안도 계속 프런티어를 두드리며 선택지를 넓힌다. (관련 포스팅이 궁금한 분들은 이 글을 참조하면 된다. 2026.07.19 - [해외 경제] - 공짜 AI가 반도체를 무너뜨린 날 — Kimi K3와 '희소성의 재편')
일견 모순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인과다. 중간 생산자에게 지금이 천국인 이유가 바로 위층이 아직 굳지 않고 서로 싸우고 있기 때문이다. 이 모든 공짜와 속도는 자선이 아니라 전쟁 보조금이다. 자본과 점유율을 건 출혈 경쟁이 소비자 쪽으로 흘러넘친 낙수다. 잘 쓰는 사람에게는, 남의 전쟁이 곧 나의 특수(特需)인 셈이다.
천국에는 유효기간이 있다

그러면 슬픈 함의가 따라온다. 이 천국은 전쟁 기간에 시한부로 묶여 있다. 위층이 몇 개로 정리되고 마진을 회수하기 시작하는 날, 지금의 소위 '딸깍 마법'은 리프라이싱된다. 무료가 유료가 되고, 관대한 한도가 조여지고, 어제 공짜였던 기능이 상위 티어로 올라간다. 그리고 Figma를 집어삼킨 그 논리가 언젠가 마찬가지로 콘텐츠 중간 생산자를 표적으로 삼지 못할 이유도 없다. 플랫폼이 기획부터 배포까지 통째로 내려오면 중간자는 사라진다. 중간 생산자의 천국은, 플랫폼의 주목 임계선 아래에 머무는 동안에만 유지되는 조건부 천국이다.
취약성은 못 없앤다, 옮길 수만 있다

그렇다고 손 놓을 일은 아니다. 여기서 두 가지를 갈라야 한다. 하나는 도구를 잘 다루는 기술 프리미엄, 즉 프롬프트를 잘 짜고 빨리 좋은 결과를 뽑는 능력이다. 이건 전쟁 특수에 기생하고, 도구가 좋아질수록 증발한다. 여기에 미래를 걸면 사다리를 걷어차인 스타트업과 같은 자리에 서게 된다.
다른 하나는 도구를 통해 만들지만 도구 안에 살지 않는 것이다. 청중의 신뢰, 취향, 내가 소유한 유통 채널, 관계와 같은 것들은 전쟁이 끝나도 같이 리프라이싱되지 않는다. 플랫폼이 아니라 사람 안에 저장되기 때문이다. 추론 가격은 올릴 수 있어도, 나를 믿는 1만 명의 신뢰를 회수할 수는 없다.
그래서 핵심은 이거다. 취약성은 없앨 수 없고, 옮길 수만 있다. 지금 이 창이 주는 진짜 기회는 "싸게 많이 뽑기"가 아니라, 그들이 통제하는 의존(값싼 추론)을 그들이 통제하지 못하는 의존(인간의 신뢰)으로 갈아타는 것이다. 소멸하는 입력을 소멸하지 않는 자산으로 환전하는 일인 것이다. 그리고 그 자산을 만드는 비용은 보조금을 받는 지금이 가장 싸다. Windsurf의 실수는 Anthropic에 의존한 게 아니라(그건 불가피했다) 의존하면서 들고 나갈 걸 아무것도 안 쌓은 것이었다.
그래서, 착한 놈이 아니라 덜 나쁜 놈

냉정하게 보면 이 판은 몇 개의 파운데이션 업체가 나눠 갖는 과점이고, 대안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빠르게 굳어간다. 개인이 쥔 안전장치는 얇다. 자기 규약은 심판 없는 자기 선언이라, 상황이 불리해지면 언제든 재해석될 여지가 있다. 그러니 "착한 놈 고르기"는 슬프게도 "제일 덜 나쁜 놈 고르기"에 가깝다. 상호운용성 의무, API 비차별, 계층 분리와 같은 진짜 구조적인 안전망은 개인의 선택이 아니라 제도의 몫이다. 그리고 그 제도는 굵직한 파운데이션 업체들이 위치한 미국에서도 연방이냐 주냐를 놓고 진통 중이다. 지금 상황에서 제도는 기술 발전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
그럼에도 이 무력감을 확정된 미래로 착각하진 말자. 지배적 사업자가 가장 잘하는 건 경합 중인 미래를 이미 정해진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 서사다. 인터넷 초기에도 "몇 개 포털이 다 먹는다"가 정설이었지만, 오픈 프로토콜과 규제와 새 진입자가 그 결말을 계속 뒤로 밀었다. 지금 이 씁쓸함을 느끼는 사람이 늘어나는 것 자체가 결국 제도가 움직이는 전조다.
그러니 회의를 걷어내려 하지 말고, 뭘 향해 도구를 겨눌지의 나침반으로 쓰자. 양극화는 도구 접근성에서 벌어지지 않는다. 외려 도구에 대한 접근은 역사상 가장 평등해졌다. 격차는 도구를 뭐에 겨누는가, 그리고 누구에게 닿는가에서 벌어진다. 딸깍이 누구에게나 열린 순간, 희소해지는 건 생산 능력이 아니라 안목과 관계다. 지금 앉아서 지켜보기엔 아까운 시기인 건 분명하다. 다만 잘 쓴다는 것의 '잘'이, 빨리 많이 뽑는 게 아니라 뺏기지 않을 걸 쌓는 쪽이라는 것만 기억하면 된다.
골드러시가 끝나자 곡괭이 장수도, 금 캐던 사람도 대개 그 자리를 떠났다. 끝까지 남은 건 광부들과 신뢰를 쌓아 마을을 세운 사람이었다. 지금 우리가 쌓아야 할 것도, 결국 그 신뢰다.
참고자료
- CNBC, "Anthropic launches AI drug discovery program, Claude Science," 2026-06-30 — https://www.cnbc.com/2026/06/30/anthropic-launches-ai-drug-discovery-program-claude-science.html
- Drug Discovery World, "Anthropic launches into drug discovery with Claude Science," 2026-07 — https://www.ddw-online.com/anthropic-launches-into-drug-discovery-with-claude-science-42675-202607/
- OnHealthcare.tech, "When the Toolmaker Decides to Also Make the Drugs," 2026 — https://www.onhealthcare.tech/p/when-the-toolmaker-decides-to-also
- TechCrunch, "Anthropic buys biotech startup Coefficient Bio in $400M deal: Reports," 2026-04-03 — https://techcrunch.com/2026/04/03/anthropic-buys-biotech-startup-coefficient-bio-in-400m-deal-reports/
- The Information, "Anthropic Acquires Startup Coefficient Bio for About $400 Million," 2026-04 — https://www.theinformation.com/articles/anthropic-acquires-startup-coefficient-bio-400-million
- Anthropic, "Agents for financial services," 2026 — https://www.anthropic.com/news/finance-agents
- Fortune, "Anthropic deepens push into Wall Street with new AI agents, full Microsoft 365 integration, Moody's data partnership," 2026-05-05 — https://fortune.com/2026/05/05/anthropic-wall-street-financial-services-agents-jamie-dimon/
- Sacra, "Anthropic revenue, valuation & funding," 2026 — https://sacra.com/c/anthropic/
- Anthropic, "Claude Code and new admin controls for business plans," 2026 — https://www.anthropic.com/news/claude-code-on-team-and-enterprise
- VentureBeat, "Anthropic just launched Claude Design, an AI tool that turns prompts into prototypes and challenges Figma," 2026-04 — https://venturebeat.com/technology/anthropic-just-launched-claude-design-an-ai-tool-that-turns-prompts-into-prototypes-and-challenges-figma
- Fast Company, "Design tech's hot mess: Claude Design vs. Adobe, Canva, and Figma," 2026 — https://www.fastcompany.com/91538439/design-enters-its-frenemies-era
- The New Stack, "Anthropic launches Claude Design, a Figma and Canva rival built on Claude," 2026 — https://thenewstack.io/anthropic-claude-design-launch/
- TechCrunch, "Anthropic co-founder on cutting access to Windsurf," 2025-06-05 — https://techcrunch.com/2025/06/05/anthropic-co-founder-on-cutting-access-to-windsurf-it-would-be-odd-for-us-to-sell-claude-to-openai/
- Forbes, "Anthropic Cuts Windsurf's Claude Access Before OpenAI Acquisition," 2025-06-05 — https://www.forbes.com/sites/johanmoreno/2025/06/05/anthropic-cuts-windsurfs-claude-access-before-openai-acquisition/
- InvestmentNews, "Anthropic files for IPO as AI giant nears $1T valuation," 2026 — https://www.investmentnews.com/equities/anthropic-files-for-ipo-as-ai-giant-nears-1t-valuation/266819
- CNBC, "Apple, Nvidia vie for title of world's most valuable company," 2026-07-17 — https://www.cnbc.com/2026/07/17/apple-nvidia-aapl-nvda-market-cap.html
- Forbes, "Apple Briefly Unseats Nvidia As World's Largest Company," 2026-07-17 — https://www.forbes.com/sites/tylerroush/2026/07/17/apple-unseats-nvidia-as-worlds-largest-compa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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